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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도 Otbit’ 전시서문

 

 

신희원(갤러리도올 큐레이터)

 

 

조은정의 최근 작업인 《Orbit Series》는 마음의 균형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화면에 등장하는 형상들은 분명한 형태를 지니고 있지만 현실 너머의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익숙함과 이질감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설득력을 얻는다. 여기서 균형은 고정된 조화의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감정과 존재들이 완전히 충돌하지도, 완전히 멀어지지도 않은 채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상태에 가깝다. 작가는 이러한 관계의 구조를 ‘궤도(Orbit)’라는 개념을 통해 시각화한다. 여기서 궤도는 하나의 중심을 맹목적으로 도는 선이 아니라,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유지되는 거리의 질서이다.

 

작가의 초기 작업은 현실과 환상 사이의 긴장감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개인의 시선을 중심으로 숲과 폐허, 몽환적인 공간 속에 놓인 작은 존재들을 바라보며, 현실의 질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내면의 욕망을 드러내었다. 화면은 현실과 무의식이 충돌하는 심리적 장면으로 펼쳐지며, 이때 환상은 단순한 비현실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충족되지 못한 욕망과 감정이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작동했다. 이러한 점에서 조은정의 이전 회화는 현실이 욕망을 제한하는 한편, 환상을 통해 억압된 충동이 표출된다고 보았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적 관점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Orbit Series》에 이르러 작가의 관심은 욕망 자체보다 관계가 형성되는 방식으로 이동한다. 화면 속 행성들은 우주 속에서 도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 안에서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공존하는 존재들이다. 그것들은 감정과 감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적 거리를 드러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행성이 무엇을 의미하는가가 아니라, 그 사이에 형성되는 거리와 리듬이다. 너무 멀어도, 지나치게 가까워도 관계는 유지될 수 없다. 작가가 말하는 균형은 혼자 완성되는 상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관계를 조율하며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행성은 고양이와 함께 이동하고, 정원과 회랑, 물 위의 공간을 떠돌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변화는 정신분석의 흐름 안에서도 이해할 수 있다. 프로이트가 상징 하나하나의 의미를 통해 무의식을 해석하려 했다면, 멜라니 클라인은 인간이 처음에는 대상을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으로 분리해 경험하지만, 성장하면서 그것이 하나의 동일한 대상임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주목했다. 도널드 위니컷은 인간이 현실과 환상, 자아와 타자 사이의 중간공간 (transitional space)에서 놀이하고 관계를 맺으며 자신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이 공간은 타인을 완전히 소유하거나 이해하는 대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한 채 관계를 지속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여백이다. 조은정의 회화에서 행성과 사물이 들어간 풍경은 이러한 중간공간을 만들어내는 매개물처럼 기능한다. 그것들은 감정을 직접 해결하거나 설명하기보다, 감정이 잠시 머물고 스스로 견딜 수 있도록 거리를 만들어준다.

 

조은정의 회화 역시 하나의 상징을 해석하기보다, 서로 다른 형상들이 하나의 장면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궁전과 계단, 회랑과 행성, 나무와 물은 분명한 형태를 지니면서도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는다. 각각의 형상은 화면 안에서 자연스럽게 조응하며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아치형의 문 너머로 이어지는 공간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경계가 아니라, 다양한 감정과 기억이 잠시 머물며 새로운 감각을 형성하는 장소가 된다. 머무름과 이동, 안정과 변화가 공존하는 이러한 공간은 삶의 불확실성을 품으면서도,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정원과 회랑, 물 위의 공간, 지하의 건축 구조 역시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들은 감정이 머물고 순환하는 내면의 장소이자, 서로 다른 존재들을 수용하는 보호된 공간으로 기능한다. 위니컷이 말한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처럼, 조은정의 공간은 불안을 제거하기보다 감정이 무너지지 않은 채 머물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한다. 화면 속 행성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흩어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Orbit Series》에서 균형은 완성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흔들리면서도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다시 조율되는 과정이다. 작가는 행성의 궤도를 통해 인간이 타인과 감정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한 거리를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 고립과 연결은 더 이상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서로를 침범하지 않은 채 하나의 장면 안에서 공존하며,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는 균형의 가능성을 조용히 제안한다.